승부타서 中에 4-5로 패… 열악한 환경속 투혼 빛나
1년 전쯤 일이다. 지난해 8월 열린 유럽하키선수권 대회엔 검은 머리 한국인 선수 6명이 뛰고 있었다. 아시아선수권이 아닌 유럽선수권에서다.더구나 6명 모두 한때 태극마크를 달았던 선수들이었다. 뭐가 잘못된 걸까. 어떤 이유로 이들은 유럽선수권에서 뛰게 되었을까. 해답은 간단했다. 한국에서 하키로 먹고살기가 힘들어 아제르바이잔으로 귀화했다. 어려서부터 나이먹도록 배운 건 하키 하나였다.
그러나 뛸 팀이 없었다. 한국에 하키 여자 실업팀은 딱 5개다. 연봉은 2000만~3000만원 수준이다. 자리는 모자라고 자리를 차지해도 사는 게 만만치 않다. 고민하던 이들의 마지막 선택은 이름조차 낯선 나라로의 이적이었다. 그게 우리 하키의 현실이다.
큰 국제대회가 다가오면 모두가 으레 좋은 성적을 기대한다. 그리고 그 시기만 지나면 잊어버린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이 있는 2년 사이클로 무한 반복되는 흐름이다. 그래도 한국 여자하키는 여전히 강하다. 총알같이 빠른 특유의 스피드와 악착같은 플레이 스타일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선 1998년 방콕 대회 뒤 12년 만에 금메달 탈환을 노렸다. 24일 광저우 아오티 하키필드에서 중국과 결승전을 치렀다. 중국은 2002년과 2006년 대회 우승팀이다.
경기 초반부터 중국이 파상공세에 나섰다. 한국은 끈기 있게 버티며 기회를 노렸다. 골대 근처에서 집중 수비를 펼쳤다. 틈이 생기면 양쪽 코너라인을 따라 빠른 역습을 전개했다. 경기는 백중세였다. 전·후반 시간을 다 쓰고 연장까지 치렀지만 0-0, 승부를 내지 못했다.
결국 메달 색깔은 승부타에서 갈렸다. 한국은 처음 나선 김은실이 득점에 실패했다. 강하게 때린 스트로크가 골대 왼쪽 상단을 맞고 튀어나왔다. 이후 실수 없이 4명 선수 모두 득점에 성공했지만 중국은 5명이 모두 골을 집어넣었다. 4-5. 한국 패배였다. 금메달은 중국에 넘어갔다. 중국은 아시안게임 3연패 기록을 세웠다.
경기가 끝난 직후, 선수들은 “그래도 후회는 없다.”고 했다.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쏟아부어서 괜찮다.”고도 했다. 환경이 열악해도 선수들은 씩씩하다. 임흥신 감독은 “그저 선수들이 마음 편하게 운동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소박한 바람을 드러냈다. 이제 앞으로 2년 동안 하키는 또다시 배고픈 스포츠다.
광저우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2010-11-25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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