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억 전문기자의 건강노트] 쓸개 떼어 냈으니 쓴맛 볼 일 없겠지

[심재억 전문기자의 건강노트] 쓸개 떼어 냈으니 쓴맛 볼 일 없겠지

입력 2013-03-11 00:00
수정 2013-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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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날, 모 대학 교수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나이도 비슷하고 죽도 잘 맞아 허물없이 지내는 터수였다. 모처럼 만나 커피를 나누는데 뭔가 머뭇거리는 데다 안색도 어두웠다. 이상하다 싶어 무슨 일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제서야 속내를 털어놨다. “복통이 있는데 복통뿐 아니라 소화도 안 되고 안색도 누리끼리하게 변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몸속에 뭔가 변화가 있긴 있는데 암 생각이 자꾸 난다”고 털어놨다.

그의 불안이 이해가 됐다. 여기 저기 떠돌며 시간강사 하느라 마흔에야 결혼을 했고, 늦게 얻은 아이는 겨우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다음 날 병원에 데려가 검사를 받게 했다. 검사 끝에 내려진 결론은 담낭에 염증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의료진은 암에 대해 말을 아꼈지만 암이 생겼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는 상황임을 직감했다. 주치의의 의견은 복강경으로 상태를 확인하겠지만 아마 쓸개를 절제하기가 쉽다는 것이었다. 한밤중에 그의 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혹시 다른 일은 없겠느냐는 것이었다. 암 얘기를 꺼내는 건 섣부르다 싶어 입을 닫았다. 수술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의료진은 담낭 부위에서 암성 징후가 확인돼 담낭과 담도를 포괄적으로 제거했으며 정확한 결론은 조직검사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조직검사 결과 암세포가 확인됐다. 다행히 지금까지도 이상 징후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후 식사 자리에서 만난 그 친구는 예전보다 명랑했다. “쓸개가 없으니 인생에서 더는 쓴맛을 볼 일이 없어 마냥 즐겁다”며 웃었다. 큰 병을 겪으면서 세상을 사는 방법이 바뀐 것인데, 아무래도 그게 정답처럼 여겨졌다. 누구도 건강만큼은 장담하지 말랬는데 문득, 터무니없이 내 건강을 과신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떠나지 않았다. 자꾸 되짚어 생각해도 건강에 대한 믿음이 황당하다 싶어 자꾸 가슴 한편이 졸아들던 날이었다.

jeshim@seoul.co.kr



2013-03-11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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