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인 여행 일정 맞추려고 ‘과속·난폭·졸음운전’이 참사 불러
지난 13일 승객 10명이 목숨을 잃은 경부고속도로 관광버스 사고로 본격적인 단풍철 여행길 나서기가 두려운 지경이다.적게는 20명에서 많게는 40여 명이 탑승하는 대형 버스는 사고가 났다 하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짜인 여행 일정에 맞추려고 과속이나 난폭·졸음운전을 하다가 참사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아 ‘달리는 시한폭탄’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연중 가을철에는 대형 버스를 이용해 단체 관광에 나서는 관광객이 많아 사고 위험이 상존한다.
◇ ‘났다 하면 대형 참사’…달리는 시한폭탄
올해 들어 전국에서 발생한 관광버스 중 최악의 참사로 기록된 경부고속도로 참사는 지난 13일 오후 10시 11분께 발생했다.
당시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경부고속도로 언양 분기점에서 경주IC 방향 1㎞ 지점을 운행하던 관광버스에서 갑자기 불이 났다.
이 불로 탑승자 20명 중 10명이 빠져나오지 못해 숨졌다. 나머지 10명은 창문을 깨고 탈출했지만 7명은 중경상을 입었다.
대부분 승객은 중국으로 여행을 갔다가 돌아온 한화케미칼 퇴직자 부부로, 희생자는 모두 50대 중반부터 70대 초반이다.
경찰은 버스가 앞선 차량을 추월하려고 차선을 바꾸려다 사고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보고 조사 중이다.
이 사고 이전의 관광버스 참사는 지난 7월 17일 오후 5시 54분께 강원 평창군 봉평면 영동고속도로 인천방면 180㎞ 지점에서 났다.
당시 졸음운전을 한 관광버스 운전자는 속도를 줄이지 못한 채 시속 91㎞로 질주하다 앞선 승용차 5대를 잇달아 추돌했다.
이 사고로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여행을 떠난 20대 여성 4명이 숨지고, 동해안 피서를 마치고 귀가하던 일가족과 버스 승객 등 3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 사고 이후 봉평 터널에서는 연쇄 추돌사고가 끊이지 않아 ‘마의 터널’이라는 악명을 사고 있다.
운전자의 기지로 대형 참사는 모면했지만 아찔한 버스 사고도 최근 잇따랐다.
지난 8일 오후 5시께 대전 대덕구 와동 한 도로에서 관광버스가 내리막길을 달리다 갑자기 도로 옆 주택 담벼락과 전봇대를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장애인 7명을 포함한 버스 승객 25명이 다쳤으나 사고 당시 모두 안전띠를 착용해 크게 다친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버스 운전자는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를 밟았는데도 차가 멈추지 않자 승객들에게 의자를 꽉 잡으라고 말한 뒤 주택 쪽으로 핸들을 꺾는 기지를 발휘해 참사를 모면했다.
◇ 역대 최악의 대형 버스 참사…주로 행락철에 집중
2013년 9월 12일 오후 7시 15분께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구리방향 사패산 터널 출구에서 공항리무진 버스가 승용차를 들이받는 등 9중 추돌사고가 나 2명이 숨지고 19명이 부상했다.
당시 속도를 줄이지 못한 공항버스가 쏘나타에 올라탄 채 그대로 직진했고 이 충격으로 앞서 있던 차량 7대도 연쇄 추돌했다.
앞서 2010년 7월 3일 오후 1시 17분께 인천시 중구 운서동 인천대교 요금소에서 인천국제공항 방향으로 약 500m 지난 지점에서 24명이 탑승한 고속버스가 도로 아래 공사현장으로 추락했다.
당시 평화롭던 토요일 오후 발생한 이 사고로 14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쳤다.
2010년 4월 19일 서울∼춘천고속도로에서는 관광버스가 5중 추돌사고를 내 5명이 숨졌고, 그해 3월 30일 삼척시 원덕읍 월천리 7번 국도에서 부산발 속초행 시외버스 추락사고로 6명이 숨지고 13명이 다쳤다.
2009년 12월 16일 오후 5시 40분께 경북 경주시 현곡면 남사리 남사재 주변 925번 지방도에서 승객 등 31명을 태우고 경주 방향으로 달리던 관광버스가 30여m 언덕 아래로 굴러 18명이 사망하고 13명이 부상했다.
당시 사고가 난 관광버스에는 70∼80대 노인들이 타고 있었다. 같은 마을에 살던 노인들은 단체 온천관광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2004년 10월 20일 오후 3시 45분께 강원 평창군 용평면 속사2리 신약수 인근 8번 군도에서 관광버스가 도로 옆 15m 아래 숲 속에 추락, 단풍관광객 15명이 숨지고 18명이 다쳤다.
2003년 10월 21일에는 경북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 도립공원 청량산 매표소 부근 진입로에서 관광버스가 40여m 아래 협곡으로 추락했다.
이 사고로 단풍 관광길에 나섰던 19명이 숨졌다.
◇ “버스 운전자 안전교육·사고 시 행정처분 강화해야”
14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발생한 대형 버스 교통사고는 2천282건으로, 이 중 가을철인 10∼11월이 전체의 20.9%를 차지했다.
5건 중 1건은 가을 행락철에 발생하는 셈이다.
실제 단풍 행락객이 많이 찾는 강원에서는 교통사고 사망자가 10월에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강원지역에서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3년간 10월 평균 사망자는 24.3명에 이른다.
이는 3년간 전체 월평균 사망자 19.8명보다 4.5명이 많은 수치다.
이뿐만 아니라 행락철인 10월에는 과속 단속 적발도 다른 달보다 34%가량 많다.
이처럼 과속 차량과 교통사망 사고가 연중 10월에 집중되는 이유는 단풍철 들뜬 분위기에 편승한 과속이 빈번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여기다 단풍 행락철에는 개인 차량을 이용하기보다는 대형 버스를 이용한 단체 관광객이 많다 보니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진다.
교통안전공단 정관목 교수는 “계절적으로 단풍철에 사고가 10∼20%가량 많은데 이는 단체 관광객이 대형 버스를 주로 이용하기 때문이며, 결국 대형 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고 밝혔다.
이어 “경부고속도로와 유사한 사고 시 승객을 신속히 대피시킬 수 있도록 대형 버스 운전자에 대한 실질적인 교육이 더 확대될 필요가 있다”며 “무엇보다 대형사고 낸 버스 업체와 운전자에 가혹할 정도의 행정처분을 내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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