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이은주, 최시내
여름방학이 끝나지 않은 8월의 금요일 오후, 한가람 미술관은 단체견학 온 유치원생들과 <영국 근대 회화전>을 보러 온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1층 카페에서 만난 이은주 사진작가는 그 번잡함에서 가능한 멀리 떨어지려는 듯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예순이 넘었지만 작가에게서는 명랑한 활기가 느껴졌다. 인터뷰 중 그가 한 ‘예술가는 영원히 현역이어야’ 한다는 말처럼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에너지는 여전히 현역으로 사는 예술가이기에 가능한 것인지 모른다.무대사진의 개척자, 1세대에서 2세대로의 계승

이은주 작가는 무대 사진이 전무하던 70년대 중반부터 무용 공연을 렌즈에 담기 시작했다. 모든 분야의 개척자들이 그렇듯 남들이 시도하지 않은 일을 선택한 그에게도 수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무용을 테마로 한 외국의 사진작품을 접한 뒤 공연사진의 아름다움과 필요성을 깨달았지만, 그 당시 무용단이라고는 국립무용단과 시립무용단, 리틀엔젤스가 전부였고 그나마도 촬영 허가가 잘 나지 않았다. 지금처럼 사진 매체의 중요성이 부각되던 때가 아니었다. 그런 상황이 개선되기 시작한 건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였다. 부분적으로나마 동구권이 개방되면서 볼쇼이 발레단과 키로프 발레단을 비롯한 외국의 수준 높은 문화 예술이 유입되었고, 그런 변화에 발맞춰 무용과와 예술학교가 생겨났다. 현재 공연사진 작가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최시내 작가는 이은주 작가의 딸이다. 공연사진 1세대 작가인 어머니의 뒤를 이은 셈이다. 처음에는 딸이 자신의 뒤를 잇는다는 뿌듯함보다 우려가 더 컸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공연장 가서 셔터만 누르는 게 아니에요. 몸을 움직여 춤을 추지 못한다 뿐이지 무용수 이상으로 무용에 대해서 많이 알아야 해요. 공연 당일 하루 종일 무용수들과 함께 움직이는 건 말할 것도 없어요. 연습할 때도 지켜보고, 무용수와 안무가에 대해서도 꿰뚫고 있어야 하죠. 기자재는 또 얼마나 무거운데요. 여자가 하기에 육체적으로도 힘든 작업이에요.”
그의 말처럼, 우리나라에서 공연 사진을 찍는 여성 사진작가는 거의 없다. 그런 만큼 최시내 작가의 노력은 남다르다. 음악을 이해하지 않으면 무용 또한 이해할 수 없다. 사진을 찍지 않는 날 연주회를 관람하고 음악 공부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또 무용수의 움직임을 0.1초의 오차도 없이 포착하기 위해서는 작품 순서와 동작을 꿰뚫고 있어야 한다. 거기에 피사체가 된 무용수의 특징과 안무가의 스타일, 공연하는 작품의 분석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최시내 작가는 자신이 찍을 발레리나의 체중 변화까지 눈치 챌 정도다.
“처음 딸이 이 길에 들어서겠다고 했을 때는 걱정스러웠어요. 얼마나 힘든지 누구보다 제가 잘 아니까요. 하지만 요즘 딸의 작업을 지켜보고 있으면 잘해 가고 있구나 싶어 뿌듯합니다.”
사진에 관해 엄격한 이은주 작가지만 딸의 작품을 보여줄 때만큼은 여느 어머니와 다르지 않다. 스승이고 선배지만 부모다. 딸의 작품을 꺼내 보이며 “이 사진 참 좋지요?”라고 묻는 이은주 작가의 목소리에 자랑스러움이 묻어난다.

동행의 즐거움과 어려움
그렇다고 딸의 사진에 관해 후한 평가만을 내리지 않는다. 평소 사이 좋은 모녀지만 사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의견 충돌로 다툼이 빈번하다고.
“작품 얘기하면 늘 싸우다시피 해요. 우리 때랑 달라서 그래요. 카메라 앵글보다 포착 시점까지, 나는 노파심에 이런저런 요구를 하죠. 그러면 딸은 참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지 잔소리 한다고 싫어하고. 가끔은 현장 나가서도 다퉈요. 물론 더 나은 작품을 위해서지 다른 뜻은 전혀 없어요. 요즘은 시내가 사진 찍으면 지켜보기만 해요. 작품 나오면 결과는 보죠. 그런데 잘 찍었어요. 선배로서, 스승으로서, 부모로서, 흐뭇하고 뿌듯해요.”
이은주 작가는 그것을 ‘세대교체’라고 말한다. 그것은 시대의 흐름과 같아 거스를 수 없고 거슬러서도 안 된다고. 이은주 작가는 최시내 작가의 참신한 감각을 흡수한다. 최시내 작가는 이은주 작가의 깊이를 배운다. 혈육이면서 동료이기에 어쩔 수 없는 불화도 있지만 행복한 고역이다.

이런 모녀가 지금은 공동 전시회를 기획하고 있다. 여러 차례 개인전을 가진 어머니와 달리 최시내 작가에게는 첫 개인전이다. 전시회 명은 <모녀전>. 이은주 작가는 ‘백남준의 삶과 예술’이라는 주제로 백남준의 사진을, 최시내 작가는 ‘강수진의 예술세계’라는 주제로 강수진의 사진을 각각 25점씩 출품할 예정이다. 두 예술가의 초상권 동의 하에 단독 전시회가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전시회는 성남아트센터갤러리를 시작으로 일본 미국 프랑스 등에서 개최된다. 이은주 작가에게는 딸과 함께한다는 점 이외에도 이번 전시가 각별하다. 생전에 백남준 선생과 친분이 두터웠기 때문이다.
“사진이 아니었다면 제가 어떻게 그분과 가까워졌겠어요.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지만 사람은 한 번 보고 알 수 없어요. 한 예술가를 오랜 시간에 걸쳐 지켜본다는 게 중요해요. 저 역시 사진을 통해 백남준 선생의 인간성, 예술관, 인생관을 알게 되었고 그 시간들이 쌓여 그분에게 애정을 가지게 되었어요.”
인물사진은 인연이자 기억
이은주 작가는 백남준을 비롯해 인물 사진을 많이 찍었다. 그 사진들로 <이은주가 만난 108 문화예술인들>이라는 전시를 하기도 했고 <이은주가 사진으로 만난 인연>이라는 제목으로 어느 매체에 사진과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제가 찍은 예술인들 중에는 이제 연세가 많이 드신 분도 계시고 백남준 선생처럼 고인이 된 분도 계시지만, 작업실에서 사진을 보면 옛날 생각이 많이 나요. 촬영할 때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촬영이 끝나고 어디 가서 밥을 먹었고 사진에 대해 뭐라고 코멘트를 해줬는지. 사소하지만 소중한 기억이에요. 그때는 함께 청춘과 예술을 공유했는데 나도 그분들도 이렇게 나이를 먹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죠. 그렇게 보면 인물 사진은 단순한 사진이 아니라 인연이고 기억이에요.
한 사람을 뷰파인더에 담는다는 것은 단순히 셔터를 누르는 일, 감광물질이 입혀진 필름 위에 상이 맺히게 하는 기계적인 작업만은 아닐 것이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이은주 작가가 찍은 백남준 사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그와 정신적 동행자가 아니라면 어떻게 그 영혼의 파장을 포착할 수 있겠는가. 백남준의 손, 의상, 그리고 뒷모습의 머리카락. 그의 몸에 딸려 있는 것만이 아니라 그의 손이 닿은 주위의 모든 물건에 찍힌 지문의 흔적까지를 찍어내는 놀라운 사진술은 전기 작가의 레토릭을 앞지른다.… 그러니 백남준의 기념관은 기념관의 작품이 아니라 오히려 이 한 장 한 장의 사진 속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백남준 자신의 몸이 바로 미디어 아트의 그 미디어라고 할 수 있고 그 미디어를 예술 그대로 재현한 것이 바로 이은주 작가가 보여주고 있는 이 사진전으로 환원된다.”
TIP
최시내 사진전
<국내전시>
전시기간: 2010. 10. 15~25
전시장소: 성남 아트센터 갤러리
<일본전시>
전시기간: 2010. 10. 25~31
전시장소: 일본 한국 문화원 갤러리
<뉴욕전시>
전시기간: 2011. 2. 9~3. 4
전시장소: 뉴욕 한국 문화원 갤러리
글_ 하재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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