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도권 유지 “글쎄”…중미·카리브 석유지원 계속대미 관계서 ‘실용 노선’ 취할지 관심
14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대통령 재선거에서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후계자인 니콜라스 마두로가 당선되면서 차베스 사망으로 흔들렸던 남미 좌파연대가 재정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카리스마 넘쳤던 차베스와 달리 존재감이 약한 마두로가 이끄는 베네수엘라가 과거처럼 역내 좌파 블록을 주도할 수 있을 지는 두고 볼 일이다.
남미는 콜롬비아와 칠레 정도를 제외하면 좌파 국가 일색이다.
’강경 좌파’ 그룹에서 차베스의 베네수엘라가 선두였다면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가 이끄는 중도 좌파는 다른 한 축을 형성했다.
베네수엘라와 함께 강경 좌파로 분류되는 볼리비아와 에콰도르는 차베스 집권 시절 베네수엘라와 정치·경제적 교집합을 이뤘다.
쌍방 간 협력이라기보다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 많은 것을 지원해준 베네수엘라를 향한 두 나라의 애정이 컸다고 보는 게 맞다.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과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은 1998년 차베스가 첫 집권한 뒤 남미에서 좌파 정치가 확산되는 가운데 권력을 잡은 이들로, 차베스의 통치방식을 마치 ‘롤모델’로 삼아왔다.
코레아는 차베스식 좌파 정치를 밀어붙이며 올해 2월 3선에 성공했고, 모랄레스는 2014년 말 연임 시도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사회적 갈등 조정능력에 한계를 드러내며 인기가 떨어진 모랄레스에 있어 동료 좌파 지도자인 마두로의 대선 승리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과연 마두로가 과거 차베스만큼 응원군이 돼 줄지는 미지수다.
중미·카리브 지역으로 눈을 돌려보면 마두로의 승리는 베네수엘라로부터 원유를 지원받아 온 ‘페트로 카리베’ 회원국들에는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페트로 카리베’ 프로그램은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PDVSA)가 중미·카리브 내 10여개 국가에 시가보다 싸게 원유를 공급하는 것으로 친미 성향인 도미니카 공화국을 포함, 역내 7천만 명에게 주요 에너지 공급원이 돼 왔다.
마두로는 유세 동안 ‘페트로 카리베’ 프로그램을 유지하겠다고 천명한 반면 마두로에 맞섰던 엔리케 카프릴레스 야권 통합후보는 “단 한 방울의 석유도 공짜로 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페트로 카리베’의 폐기를 주장했다.
베네수엘라의 석유 지원에 크게 의존했던 쿠바와 니카라과가 베네수엘라 대선 향배에 촉각을 세울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베네수엘라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쿠바는 지원받은 석유로 일일 에너지 소비를 충당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매년 30억 달러의 석유를 지원받았고, 이는 침체를 면치 못해온 쿠바 경제에 버팀목 역할을 했다.
니카라과도 차베스 집권 시절 석유 지원을 받아 에너지 문제를 해결한 것은 물론 연간 5억 달러에 달하는 자금 지원으로 빈곤 퇴치 작업을 벌여왔다.
에너지 걱정 없이 빈곤 퇴치에 힘을 쏟았던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은 2011년 11월 치러진 선거에서 3선에 성공했다.
마두로의 승리로 짚어볼 만한 또 다른 부분은 미국과 베네수엘라 간 관계다.
차베스 집권 시절 베네수엘라와 미국은 정치적 앙숙이었다.
양국은 서로 간 대사(大使)를 맞추방할 정도로 극심한 갈등을 빚어왔다.
다만 베네수엘라와 미국이 석유 수출·입을 매개로 관계를 유지했던 덕분에 경제 분야에서 협력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과거 차베스는 반미 선봉답게 미국을 향해 거침없는 비난을 퍼부어댔고, 미국은 차베스를 냉대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왔다.
미국을 향한 차베스의 원색적인 비난은 2006년 조지 W. 부시 전(前) 미국 대통령을 두고 ‘악마’, ‘살인자’라는 폭언에서 극에 달했다.
미국에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선 뒤로 차베스의 비난 수위는 다소 낮아졌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반목’의 시선만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런 배경 속에도 마두로가 이끄는 베네수엘라는 차베스 때와 조금은 다르지 않겠냐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양국 간 관계 회복에는 미국이 먼저 시동을 걸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달 5일 차베스 사망과 관련된 성명을 내 “미국은 베네수엘라 국민에 대한 지지와 베네수엘라 정부와의 건설적인 관계 발전에 대한 관심을 다시 확인한다”고 밝힌 바 있다.
마두로가 대선 운동기간 미국 외교관을 쫓아내고, 미국 전직 관리들의 암살 의혹을 제기했지만 차베스식 막무가내 외교와 거리를 둘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마두로가 과거 외무장관으로서 보였던 실용적 태도 때문이다.
마두로는 외무장관이던 2010년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는 반군 은신문제를 놓고 단교까지 선언했지만 양국은 불과 20일 만에 관계 회복의 길로 나아갔다.
당시 단교는 차베스가 주도했지만 관계 회복은 마두로가 콜롬비아 관리들과 협상에서 이끌어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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